회복경험담
도박경험자(도박자) [성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살아갈 것입니다
저는 1990년 8월 울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성장과정에서 크게 돈 걱정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전주로 넘어가 공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17살 때부터 28살이 되던 2017년까지 타지에서 가족과 떨어져서 홀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저는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는 걸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전교회장, 줄반장을 하였고,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전교회장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재수 끝에 입학하게 된 제 첫 번째 대학인 연세대학교에서도 과 회장을 하고, 2012년에는 1년간 단과대 학생회장을 하였습니다.
성격이 워낙 남에게 지는 걸 싫어하였고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남에게 과시 하는걸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또한 제가 가지고 싶은 건 꼭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가게 일로 바쁘셨던 부모님께서는 제가 원하는 건 최대한 들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엔 항상 2% 뭔가 부족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돈의 소중함을 너무 빨리 깨우쳤고 돈이 있어야 남에게 과시하고 더 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친구들 만나면 밥은 꼭 내가 사야했고 친구들에게 얻어먹거나 빚을 지는 건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주위에 친구가 항상 많았습니다.
저에게는 꿈이 구체적으로 없었습니다. 지인들이 가끔 저에게 꿈을 물어보면 저의 대답은 항상 부자가 되는 것 또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답변을 하였습니다. 요즘 생각해보면 작은 꿈이라도 구체적인 꿈을 가지고 있다면 그게 정말 도움이 많이 된다는 걸 느낍니다.
하지만 불법 스포츠도박이 제 삶을 180도 뒤바꿔놓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8월, 여름방학을 맞아 잠시 집에 내려와 있던 저는 중학교 시절 친했던 친구를 통해 불법 스포츠도박이란 것을 접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점차 도박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도박에 점점 빠지게 되며 처음에 1만원~3만원으로 시작했던 것이 점점 베팅금액이 커졌습니다. 도박이라는 악마가 제 안으로 들어온 시점이 이때가 시작 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 저는 거의 매일 배팅을 하기 일쑤였고 당시 넉넉했던 용돈은 점점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돈을 다 잃은 날에는 부모님께 전화를 하여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돈을 송금해달라고 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믿고 돈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던 2013년 1월, 방학을 맞이해 집에 내려가 있던 저는 안방에서 5만원 현금뭉치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이 그때 당시 부모님이 하시던 식당의 재료였던 동태 값을 치르려고 했던 돈이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 돈에 손을 대게 됩니다. 잠시만 몰래 가져가서 쓰다가 도박에서 돈을 따서 곧바로 다시 갖다놓을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될 리가 없었고, 결국 900만원이나 되는 큰돈을 다 날리게 됩니다. 부모님이 현금뭉치가 없어진 것을 곧 알게 되셨고, 어떻게 된 일이냐는 질문에 저는 친구가 급하게 필요하다 그래서 빌려줬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어 둘러댔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많이 당황하셨지만, 저를 크게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당시 재수생이던 동생의 대학입시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제가 가져간 현금사건도 같이 좋게 좋게 넘어가게 됩니다.
다시 서울로 올라가서 학교를 다니게 된 2013년 1학기, 커져버린 베팅액수를 다시 줄여서 하기에는 너무 재미도 없고, 자본금이 풍족하게 있으면 도박이 잘 될거 같다는 어리석은 생각에 당시 저축은행 두 군데에서 대학생 학자금 대출을 받게 됩니다. 당연히 얼마 지나지 않아 대출받았던 몇 백만원은 금방 다 잃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학교생활이 정상적으로 될 리가 없었고 표정도 안 좋고 안색도 점점 어두워지자 고등학교 시절부터 절친했던 친구 한명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봅니다. 완전히 솔직하게는 털어놓지 못하고 하우스에서 도박을 했다, 돈을 다 잃었다, 경제적으로 문제가 생겼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는데 그 친구가 친구 좋은 게 뭐냐면서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얼마 필요하냐고 묻길래 저는 그때까지 솔직히 반신반의한 상태였기 때문에 오백만원 정도 필요하다고 얘기했습니다. 며칠 후 그 친구는 제 계좌로 오백만원을 보내주었고, 저는 그 돈을 홀라당 도박에 탕진해 버렸습니다. 그 후로 그 친구에게 경제적 여유가 어느 정도 된다는 것을 확인한 저는 온갖 거짓말로 오백만원씩 돈을 더 빌리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그 친구에게 저는 총 4,000만원이나 되는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매달 보내주시는 용돈은 하루도 안 되어 다 잃게 되는 일이 반복되었고 또 무슨 핑계를 대며 부모님께 돈을 달라고 해야 할까 고민 또 고민하다 결국에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그 해 여름, 처음으로 부모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도와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부모님은 일단 서울에서 학업을 중단하고 집에 내려오라고 하셨고 저는 순순히 그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대구에 내려온 저는 부모님과의 약속, 부모님의 기대와는 달리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겉으로는 안하는 척 하면서 또다시 돈을 어떻게든 마련해서 도박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다음 해인 2014년 영장이 나와 군에 입대하게 됩니다. 군 입대 후에도 휴가 때면 그동안 모아뒀던 군인 월급으로 늘 도박을 하였습니다. 심할 때는 사회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대리베팅을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 8월, 드디어 전역을 하게 되었고, 당시 저에게는 군 생활 막바지에 군병원에 입원을 오랫동안 하여 지급받게 된 보험금 약 850만원 정도가 있었습니다. 부모님과는 군 제대이후에는 경제적으로 독립하겠다고 얘기가 된 상태였고, 군병원에서 오랫동안 지내면서 알게 된 친구의 영향으로 주식공부를 조금 하게 된 저는 보험금을 주식으로 굴려서 그 수익으로 제 생활비도 쓰고 또 보험금도 점점 더 불려나가야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었습니다. 3년만의 복학을 준비하며 설레는 마음을 뒤로하고 서울에 올라오는 열차 안에서 저의 허황된 꿈조차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850만원을 도박에 다 날려버린 것이었습니다. 집에는 도저히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부터 주변 친구들에게 30만원~50만원씩 빌려서 5만원씩 베팅해서 근근이 제 생활을 이어나가고 빌린 돈들은 돌려막기 식으로 갚아나가는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다가 휴대폰에 장기카드대출 문자가 왔고, 반신반의하며 시도해본 대출이 성공하여 400만원이 계좌로 들어왔습니다. 심사숙고하여 또다시 베팅을 하였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는 돈을 좀 땄습니다. 약 2천만원정도 딴 것 같습니다. 대출받았던 액수는 바로 다 갚아버리고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증권계좌를 만들어서 주식에 손을 댔습니다. 그러나 돈이 제대로 된 돈으로 느껴지지 않던 그때의 저에게 주식은 너무 오랜 기간 기다려야 결과가 나오는 종목이었고, 또한 욕심을 부려 진행했던 주식담보대출 이후에 당시 보유했던 주식종목에 중국발 악재가 터져 얼마간의 손실을 입게 됩니다. 그래서 갖고 있던 주식을 모두 정리해서 전부 현금화하였고, 그 돈으로 또다시 도박을 하게 됩니다. 역시나 조금의 업다운 파도가 있은 후에는 모두 다 잃게 되었고, 저는 또다시 대출의 문을 두드리게 됩니다.
겁이 없어진 저는 대부업체 등에서 대출받은 돈으로 도박을 다시 시작하였고, 그해 12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주 큰돈을 따게 되었습니다. 대부업체 등에서 빌린 돈을 다 갚고 나서도 약 5500만원 정도가 제 수중에 남았습니다. 저에게 이런 행운이 계속 갈 줄 알았지만 기쁨도 잠시 누구나 다 예상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많던 돈은 서서히 줄기 시작했고 하루에 적게는 500만원에서 많게는 이천만원씩 잃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 배팅하는 것이 두려워졌고 두려운 만큼 돈은 계속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딴 돈을 모조리 다 잃었습니다. 은행, 카드대출, 대부업체에도 몇 번이나 대출이 가능한지 알아보고 알아보고 또 알아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밑바닥까지 가니 또다시 주변 사람들에게도 돈을 빌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믿고 거리낌 없이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2017년 6월이 되었을 때, 저의 빚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 있었습니다. 2억 가까운 빚이 생겼습니다. 그 중 1억 5천만원 이상은 친구 및 지인들에게 빌린 돈이었습니다. 물론 거짓말을 해서 빌린 돈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거짓말들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많이 팔아먹기도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급한 일 잘 해결하고 마지막에 갚아줘도 된다고 했던 친구들이었는데, 액수가 점점 커지고 제가 돈 부탁하는 일이 점점 잦아지다보니 친구들 사이에서 말이 나오기 시작했나 봅니다. 그리고 상황이 이상한 것을 알게 된 친구들은 수소문을 통해서 직접 저에게 돈을 빌려준 제 다른 지인들과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SNS 페이스북에 연세대학교 대나무 숲이라는 계정에 제보를 하게 됩니다. 그때 당시 제보를 받은 대나무숲 계정에서 제보 글을 올릴 때 제 이름과 출신 고등학교 명, 그리고 다니는 학과명은 X표 처리해서 올렸지만 보자마자 제 얘기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댓글로 추가 피해자를 찾고 있는 친구들의 이름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대구에 내려와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도저히 더 이상 주변에서 돈을 구할 곳이 없어지자 저는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비상용 아빠카드를 이용해서 은행 ATM에서 현금서비스를 받았고, 그 연락이 아버지께 바로 문자로 가다보니 아버지도 상황을 아시게 되었습니다. 저는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서울에서 살던 자취방에서 목을 매달고 처음으로 자살시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쉽게 죽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엄마도 제 상황을 다 알게 되셨습니다. 너무 크게 충격을 받으신 엄마가 다른 가족들에게 큰아들을 잘못 키워서 미안하다는 문자를 남기시고 휴대폰을 끄신 채 사라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고 휴대폰 위치추적을 한 끝에 다음날 서울에서 엄마를 겨우 찾을 수 있었고 엄마를 모시고 대구에 내려온 것입니다.
대구에 내려와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왕 부모님이 알게 되신 거, 해 볼만큼 한번만 더 승부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염치없게도 아버지께 삼천만원만 구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딱 그 돈으로 승부해보고 안되면 깔끔하게 패배 인정하고 더 이상 도박 안하겠다고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면서요.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부모님과 대치하던 중, 대나무 숲에 제보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저는 너무 무서웠습니다. 친구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실제로 저의 행각은 사기 행각이었습니다. 거기에 상습도박까지... 처벌을 받게 된다면 무조건 실형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던 삼천만원에 대한 얘기는 더 이상 꺼내지 않고, 친구들에게 빌린 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주실 수 있을지, 도와달라는 염치없는 부탁을 또 다시 부모님께 드리게 됩니다. 앞으로 절대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요. 그렇지만 부모님도 해결해 주실 수 없을 정도로 큰 액수였고,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저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을 만나 차용증을 새로 쓰고, 아버지가 보증을 서주시는 식으로 정리를 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일이 하나씩 정리되어가는 동안에는 정말로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컸고, 그래서 도박을 다시는 하지 않아야겠다고 정말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전 이미 심각한 도박중독자가 되어있었고
도박 앞에 너무나 무력했지만 절대 끊으려거나
멈추려하지 않았습니다. 지기 싫어하는 성향과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했던 저는 어떻게든 이
도박이란 놈을 이기려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렇게 서울에서 그 난리가 일어 난지 2달도 채 안 되었을 때, 휴학을 하고 집에 내려와서 회사를 다니며 과외도 구해서 부수적인 수입을 벌어 친구들 돈을 갚아 나가겠다는 제 계획은 또다시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지게 됩니다. 조그마한 회사에 취업하게 되자 4대 보험을 가입하게 되었고 그러자 추가적으로 대출을 할 수 있는 곳이 더 많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입사 첫날부터 대출을 알아보던 저였습니다. 8월 중순에 입사를 하였고 9월 중순에 첫 월급을 받았습니다. 첫 월급은 역시 도박에 홀랑 날려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추가로 받은 대출금 등이 점점 제 목을 조여 오는 것 같았습니다. 눈이 뒤집힐 대로 뒤집히게 된 저는 회사일로 서울에 2박3일간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출장 출발하기 전날 밤 아버지 폰을 몰래 사용해서 아버지 명의로 아버지 통장으로 천만원이라는 카드론 대출을 받아 그 돈을 제 계좌로 이체하는 짓까지 저지르게 됩니다.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아시게 되고 불같이 화를 내시며 뭐하는 짓이냐고, 서울 가지 말고 당장 일단 집에 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죄송하지만 그럴 수 없다며 도망치듯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머물던 3일간 그 돈을 다 탕진하게 됩니다.
대구 내려온 후에는 도저히 집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주일간 모텔방에서 잠을 자며 회사에만 출근했습니다. 그러나 뭔가 이상함을 눈치 챈 회사 대표님과 이사님께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와 크게 다투어서 집을 나오게 되었다고 둘러대었습니다. 그러자 대표님이 사실 얼마 전에 아버지께 연락을 받았다며 아버지가 혹시나 아들놈이 돈을 빌려달라고 요청하면 절대로 빌려주지 마시라고 했다 라는 얘기를 저에게 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 머리를 굴려 아 사실은 내가 서울에 있을 때부터 주식이랑 비트코인을 좀 했는데 그게 많이 손실이 나서 아버지랑 다퉜다며 말 나온 김에 회사 근처에 원룸을 좀 구해주실 수 있겠냐는 얘기를 합니다. 그렇게 저는 회사 근처의 원룸에서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회사 이사님께 사정을 말씀드려 개인적으로 돈을 또 빌리게 됩니다. 물론 꾸며낸 사정이었죠. 그 돈들도 다 날리게 되자 저는 또 갖가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며 회사에 금전 차용을 하게 됩니다. 물론 그 돈들도 금방 다 탕진했습니다. 그러자 돈 나올 구멍을 찾던 저는 드디어 휴대폰 내구제와 소액결제로 현금화를 하는 방법까지 손을 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돈까지 다 잃게 되자 사채에도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러던 와중에 집으로 들어오라는 부모님 말씀에 다시 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지만 제 머릿속에는 오직 돈을 따야 된다는 생각과 도박 뿐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다 못한 아버지의 제안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다시 저의 사채 빚, 회사에의 이야기 등 온갖 뒤치다꺼리는 부모님의 몫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2018년 4월, 정신병원에서 두 달간 입원생활을 끝내고 퇴원한 저는 정말로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넘쳐있었습니다. 그러나 도박이라는 무서운 악귀는 생각보다 저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권유로 가게 된 지리산의 마음수련원에서 기수별로 교육을 받는 와중에, 기수 중 가장 막내였던 관계로 총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돈 관리를 하던 와중에 또다시 저의 도박 열망이 피어올랐고, 그렇게 손대선 안 되는 공금에 손을 대게 됩니다. 수련원측에서 사실을 알게 되고 저는 퇴소를 해서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집에서 부모님은 당연히 불같이 화를 내시며 다시 돌아가라고 했지만 저는 갈 수 없다며 받아달라고 죄송하다고 정말 다시는 안하겠다고 또다시 공수표를 날리게 됩니다.
그렇게 다시 집에 들어오게 된 저는 수능을 다시 봐서 한의대를 가는 것만이 이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7월부터 약 4개월 간 열심히 공부해서 수능을 다시 보게 됩니다. 그러나 아쉽게 한의대에 갈만한 성적을 받지 못했고 저는 한의대 대신 대구교대에 새로 입학하게 됩니다. 2019년 3월 서른 살의 나이로 다시 밟게 된 대학교 캠퍼스는 저에게 신선함과 동시에 설레는 마음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여자친구를 한 명 사귀게 됩니다. 여자친구는 제가 당시에 살던 현풍에 사는 직장인이었습니다. 여자친구와 저는 급속도로 가까워 졌고, 곧 여기계신 모든 분들이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당시에도 소액의 재발이 이어져오던 상황이었는데, 제가 여자친구에게 돈을 빌리기 시작한 겁니다. 거짓말에 또 거짓말이 점점 더 커지고, 액수도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저를 믿고 저에게 한없이 베풀어주던 착한 여자친구는 자신이 빌려준 그 돈들이 도박에 쓰였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동안 열심히 직장생활해서 모은 돈 전부 다인 약 4천만원과 거기에 그것도 모자라서 대출까지 받아서 빌려달라는 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 대출받아서 빌려준 돈 합쳐서 약 7000만원의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여자친구와 알게 된지 겨우 100일 조금 넘는 시간 안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모든 뒤치다꺼리는 저희 부모님의 몫이었습니다. 사실을 알게 된 여자친구네 집에서 당연히 난리가 났고 저희 집에 찾아와서 한바탕 소동도 일어났습니다. 결국 아버지께서 또다시 저 대신 합의서를 써주셨고 합의금도 정말 어렵게 어렵게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저희 부모님께서 제게 부탁하신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제는 제발 욕심을 버리고 살자, 아직 늦지 않았다, 교대 졸업하면 선생님 되고, 풍족하지는 않아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 2학기에도 학교를 계속 다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말씀에 너무나도 크게 감동했고 또 한 번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무시무시한 이 도박이라는 놈은 끝까지,
정말 마지막까지 저를 괴롭히고 놔주지 않았습니다.
과외를 해서 한 달에 백 만원 남짓한 돈을 벌고 있던 저에게 또다시 재발이라는 마수를 뻗친 것입니다. 그렇게 재발을 한 저는 당시 개인회생을 진행하려고 변호사사무실에 세 차례에 걸쳐 수임료를 송금해줘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두 번째로 송금해줘야 할 그 돈까지 또 날리게 됐습니다. 이미 재발을 했고 앞뒤가 제대로 분간도 안 되는 상황에서 저의 선택은 학교에 같이 다니던 열 살 가까이 어린 동기들에게 돈을 빌리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믿음직스런 큰 형, 큰 오빠 노릇을 하고 있던 저에게 동기들은 거리낌 없이 돈을 빌려주었고, 액수는 또다시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과외 하던 집 어머니께도 거짓말을 해서 다음달, 그 다음달 과외비까지 먼저 가불형식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역시나 또 다 날려버리게 됐습니다. 그리고 저의 재발소식은 아버지 생일날, 아버지께 선물로 드리라며 외할머니가 주신 10만원을 아버지께 드리지 않고 바로 ATM기계로 가서 사이트에 입금해서 또다시 도박에 탕진해버린 저의 무모한 행동으로 인해 부모님께 들키게 됩니다.
이미 학교 동기들에게 갚겠다고 한 날짜는 2학기 종강과 함께 훌쩍 지나가 버린 상황이었고 저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또다시 무책임하게 잠수를 타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최후의 발악으로 엄마가 갖고 있던 명품가방 까지 몰래 훔쳐서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구해서 도박을 했습니다. 그 돈까지 싸그리 다 잃고 나니 허무함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아 도박을 해서 돈을 딸 수는 정말 없는거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그동안 저에게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되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정말 수많은 순간들이 후회스러웠습니다. 차라리 그때 그냥 죽어버릴걸. 그 때 죽었으면 우리 부모님이 이렇게 고생하고 계시진 않을텐데.. 나 역시도 마찬가지로 지금처럼 이렇게 힘들진 않을텐데.. 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잠수를 타고 있던 그 기간 동안에 혹시나 모를 기적 같은 일을 기대하면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그냥 죽어야겠다 라는 생각이 닿았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기억이 생생한 날짜 2020년 1월 6일. 그 날 눈을 뜨고 나서 저는 학교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이라는 어플에서 제 얘기인 듯 한 글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얘기인 즉슨, 페이스북 대구 제보자들이라는 페이지가 있는데 거기에 그동안의 저의 사기행각이 적나라하게 올라와있다는 글들이었습니다. 확인해보니 과외 하던 학생이 부모님과 제가 그동안 했던 이야기들이 거짓임을 알고 연락도 안 되고 하니 도움을 청하는 글이었고, 이번 글에는 지난번 연세대학교 대나무 숲 제보 글과는 다르게 제 이름과 그동안의 학교 등 자세한 신상정보가 모두 오픈되어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교대 동기들뿐만 아니라 재학생들 모두가 제 본래 모습을 알게 되었고, 조금 후에는 예전에 올라왔던 대나무 숲의 제보 글의 주인공역시 저라는 사실까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너무 두려웠습니다. 정말로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죽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강하게 저를 조여 왔습니다. 그래서 당시 집에 있던 숯과 숯에 불을 잘 붙게 하기 위한 착화탄을 이용해서 자살을 시도하게 됩니다. 밀폐된 방안에서 그렇게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어 죽어가기를 네 시간여 만에 부모님께 발견되어 119 구급대에 실려서 영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고, 몇 번의 고압산소치료 끝에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신 엄마의 권유로 저도 센터에 나와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GA에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뇌가 손상을 좀 입은 후로 제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말하는 것도 예전 같지 않고, 글씨도 예전처럼 잘 못쓰게 됐습니다. 적혀있는 글자를 읽는 것이 어려워지고, 이제는 말까지 더듬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다 병원에서 아무리 사진을 찍어보고 MRI 검사까지 해봐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 제 허리는 왜 이렇게 아픈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변화들이 제 온 몸에서 느껴졌습니다. 무얼 해도 의욕이 솟지 않고 무기력한 나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우울감에 젖어 하루하루를 보내던 저는 작년 11월 20일, 또다시 번개탄을 구해서 자살시도를 했습니다. 두 번째 자살시도 때는 도박병이 재발하거나 그래서 그랬던 건 아니지만, 도박으로 인해 있었던 첫 번째 자살시도 이후의 무기력함과 우울함 때문에 시도를 했기 때문에 도박문제와 연관이 아예 없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상이 그동안의 제 도박경험담이었습니다. 도박중독자의 진솔한 경험담발표는 자신의 기질적 결함을 진솔하게 드러냄으로써, 치유를 얻게 해주는 이상적 치유방식이라고 합니다. 진솔한 고백과 경청이 우리의 근원적 병폐인 방어적 자기합리화를 털어낼 용기를 갖게 하고 또 그 과정에서 자신을 직시하게 함으로서 회복을 촉진시켜준다고 하는데요, 저 역시도 이번 소감문을 작성하면서 조금은 스스로가 치유되는 느낌을 받은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제가 가슴에 대못을 수차례 꽂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저를 믿어주는 부모님께 이제 다시는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고 싶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평생 죽을 때까지 함께 같이 갈 여기 계신 모든 회복자 및 가족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긴 시간동안 제 회복경험담을 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문구 한마디 하면서 끝내겠습니다.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습니다.
단도박 끝까지 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2021년 회복자 성장대회 수기집 –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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