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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경험자(도박자) [성인] 2023년 따사로운 봄 햇살

작성일2024-10-25 조회수88

2023년 따사로운 봄 햇살

 

오랜만에 펜을 잡아보았다. 기나긴 터널에서 나온 것처럼 머릿속이 맑아진 느낌이다. 시작과 끝, 끝없는 반복적인 행위에 대해 한 번도 머릿속의 생각을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 느낌이 아팠고, 다시 아프고 싶지 않았고, 다시 꺼내면 혹시라도 다시 집어넣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계속 닫아 두고 있었다.

 

아직은 멀쩡해 보이지만, 예전 집단 상담에서 들었던 분들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3년 이후 또다시 재발할 수도 있다는 기시감 때문에 나 스스로 다시 한번 상기시키려고 이렇게 글을 쓴다.

그동안 스마트폰으로 컴퓨터로 조금씩 적어 놓았으나, 펜으로 초본을 작성한 적은 없었다. 생각을 글로 옮겨 적는다는 것은 아마도 그 생각을 정립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여느 때처럼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그 이야기를 다소 부끄러울지도 모르지만, 용기 내어 꺼내본다. 떠올리기 싫은 과거의 기억들과 느낌을 이제는 조금씩 지워나가고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난 치료 중이고, 회복 중 이다. 쓸 수 있는 단어의 종류와 표현이 서투르고, 과연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다.

 

어느 영화의 대사였던, “Just one small step”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많은 후회와 깨달음, 참고 버티고 고생하면서 이제는 조금 숨 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지만, 지금 이 근거 없는 자만심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한다.

과거를 떠올리며, 현재의 행복을 충분히 상기시키고, 지금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냉철함이 필요하다. 현실을 자각하고 확률 낮은 희망보다는 철저한 것, 꾸준함이야말로 재발을 방지하고 중독의 늪으로 다시 빠지지 않는 지름길이라 생각된다.

 

첫 방문

 

2016919, 처음으로 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를 방문하였다.

추석 연휴를 보내고, 안국동에 위치해 있었던 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에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한주도 빼놓지 않고 동생과 함께 상담하러 갔다.

재정상담, 법률상담, 집단상담 등 센터에서 하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빼놓지 않고 참석하였다.

2017년도에는 개인회생도 진행하였다. 개인회생만 되면 다 잘될 줄 알았지만 센터를 다니는 중에도 3~6개월에 한 번씩 재발하였고, 마지막으로 베팅하기 전까지 6~7번의 재발을 하고 나서야 멈추게 되었다.

직장을 다니고 돈을 버는 행위가 빚을 갚고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회복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지만, 겪어보니 반은 맞고 반은 아닌 것 같다.

도박중독은 정신 질병이라고 생각한다. 외형적으로 일반사람들과 구분하기도 사실상 불가능한 것 같다. 중독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다시 재발하지 않는 것도 자신의 판단과 결정으로 할 수 있지만, 혼자서는 못하기에 꼭 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과거의 기억

 

2015년 어느 여름날, 나는 업무상 이유로 미국 네바다(Nevada) 주에 있는 리노(Reno)라는 도시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이때까지는 카지노에 대한 그 어떤 기대나 설렘, 호기심 같은 것도 없었던 것 같다. 대한항공 국적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공항에 도착한 후, 미국 내의 국내선(American Air line)을 타고 리노로 향했다.

퍼퍼밀 호텔(Perpermill Hotel)은 내가 투숙했던 곳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본 것이지만, 나름 괜찮은 호텔이었던 것 같다. 체크인(Check-in)을 하고나니 호텔 로비에 카지노(Casino)라고 적혀 있는 커다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저녁 식사 후에 같이 간 이사님과 함께 카지노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고 했다. 그 곳은 한국에서 경험해 본 어두운 동네 오락실과는 차원이 달랐다.

어른들의 오락실이겠거니 생각했던 나의 안일함이 지금에 와서 아주 많이 후회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렇게 도박중독의 여정은 앞으로 어떤 시련이 올지도 모르는 채 소리 없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슬롯 머신(Slot machine)으로 게임을 해 보았다. 한번 베팅을 하는데 1달러를 지불하는 것도 큰돈이라고 생각되었기에 10센트, 20센트씩 게임을 하였다. 원래 이런 오락에 흥미가 없었던 터라 적당히 돌아다니다가 나가려고 생각했다.

이때 그냥 나갔더라면 하는 생각이 이 글을 쓰면서 몇 번씩이나 후회로 밀려 왔는지 모르겠다. 호기로운 치기였을까? 영어 한마디 못 하는 이사님에게 과시라도 하려고 한 것이었을까?

테이블 게임에 서 있는 딜러(원어민)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 보았다. 그 테이블 게임이 바로 블랙잭이었다. 원래 흥을 즐기는 것과는 성향과 맞지 않았지만, 그때의 카지노 객장 안에 있는 테이블 게임의 의자는 왠지 꽤 아늑했던 것 같다. 원어민과 말이 통한다는 즐거움이었을까? 1달러도 큰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덧 한번 베팅액이 5달러로 진행되고 있었다.

첫날은 다음 날 여정으로 인해 오래 하지않았던 것 같다. 다음 날 업무를 마치고 같이 저녁 식사를 한 후에 시차 적응으로 인해 고객과 이사님은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가셨고, 나는 다시 카지노 객장을 찾았다. 아마 이 부분이 내 인생에서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것 같다. 이때 내 나이가 35세였다. 다시 들어선 객장에서 밤새 블랙잭 게임을 하였다. 가지고 갔었던 현금 천달러를 다 잃었고, 계좌에 있는 현금과 마이너스 통장까지, 전부 만 달러를 잃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날 밤 가진 돈을 모두 잃었던 기억보다 한 번에 5천 달러를 땄던 기억만을 간직한 채 한국으로 돌아왔고, 대부분의 중독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렇게 도박에 중독되었던 것 같다.

강원랜드를 갈 정도의 시간적 여유는 없었지만, 이미 중독된 나는 그 어떤 행위로도 도박을 대체할 수 없었다. 마침내 온라인 카지노를 접하게 되었다.

아들이 태어난 지 고작 1년 남짓 되었을 때였다. 아들을 안고 아내 컴퓨터로 카지노 게임을 한 적도 있었고, 퇴근하면 집 근처 PC방부터 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카지노 게임이 모바일로 가능하게 되면서는 집에서 잠도 안자고 밤새는 날이 많았다.

 

참 기막힌 우연인지 2달 후 또 미국을 가게되었다. 다시 찾아간 그 호텔의 카지노는 나에게 도박중독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일깨워 주었다.

카드론과 대출을 포함하여 만 달러를 다 잃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본격적으로 온라인 카지노에 빠져들었다. 불과 3개월 만에 1억이 넘는 빚이 생겼다. 여기서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부모님께서 7,000만 원의 빚을 갚아주셨고, 나의 신용이 되살아났다.

그렇게 6개월 동안 가족들의 보살핌으로 정상적으로 가고 있는 줄 알았던 나는 다시 재발하게 되었고, 더 큰 빚을 만들면서 결국 혼자가 되었다.

 

20168월의 마지막 주 목요일, 회사에 이틀 휴가를 내고 나는 가출을 하였다. 더 이상 스스로 통제가 되지 않아 생을 마감하려고 했다. 집을 나설 때 마지막으로 보았던 3살짜리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34일 동안 참 많이도 울었다.

죽으려고 영동대교를 수십 차례 왕복했었고, 근처 한강공원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새벽 첫차를 타고 동대문에 있는 찜질방에서 3일을 보내고,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 엄마는 얼마나 큰 배신감을 느꼈을까? 그때의 나는 내 잘못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나를 잡아주지 않은 아이 엄마에게 적지 않은 원망을 느꼈었다.

마지막까지 나의 손을 잡아준 사람은 나의 친동생이었다. 그렇게 무일푼으로 동생 집으로 들어갔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을 갖기도 전에 동생의 조언으로 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재회

 

20215, 5년 만에 아이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정민이(아들)가 아빠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20168, 집을 나온 이후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아들이었다. 밤늦게 연락이 왔고, 당장 만날 수 있다고 아이 엄마에게 대답해 주고 나서 한참을 울 수밖에 없었다.

아들은 훌쩍 커서 8살이 되었고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입학하고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아이 엄마에게서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담임선생님의 전화에 아이 엄마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나는 그동안 꾹꾹 참고 있었던 눈물을 밤새 쏟아내었다.

 

가족을 그려보라는 말에 아들은 아빠와 단둘이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을 그렸다. 그 아래의 그림 설명 속에는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외삼촌 그리고 나입니다.”라고 적었다. 똑똑한 아이라서 그동안 말 못 하고 혼자서 많이 참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 아팠다.

아들이 좋아하는 나도 잘 알고 있는잠실의 어느 돈가스 음식점에서 아들과 재회하였고, 그렇게 5년 만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아이 엄마와 아들을 한 달에 한두 번씩 꼭 만나고 있다.

다시는 도박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또 한 가지 생기게 되었다. 어쩌면 그때 내가 아들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비참했을지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파오고 손발이 떨린다. 이런 감정이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긍정의 신호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새로운 만남

 

20194월의 어느 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를 찾았다. 안국동에서 충무로 근처로 센터가 옮겨간 이후 첫 방문이었다.

윤 선생님과의 상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0191월 말, 마지막 베팅을 하고 모든 것을 탕진한 그날. 살고 있던 원룸의 보증금까지 모두 없어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회사에서 마련해준 공동 숙소에 모든 짐을 옮길 수 있었다.

주말에는 콜택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 퇴근을 하면, 동생 집에 주차를 하고 근처 찜질방에서 잠을 청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하루 10시간씩 운전을 하고, 일요일 저녁이면 다시 안산으로 돌아갔다.

이 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짐한 게 한 가지 있다. 만약 다시 재발한다면 회사를 그만두고 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 근처 고시원으로 들어가겠다고 말이다. 정말이지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던 시기였고, 1년 동안 제대로 쉬어 본 날이 없을 정도였다.

휴일이면 항상 체력이 허락하는 한 아르바이트를 하였고, 월세 보증금이라도 모아서 작은 원룸이라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2019년에는 주중 오후, 저녁에 집단 심화 상담도 진행하고 있었다. 그때 월급을 급여 통장으로 받고 있었는데, 매번 3개월에서 6개월 주기로 재발하고 있던 나였기에 급여일 전후가 되면 긴장과 불안, 초조한 증상이 있었다.

급여가 입금되더라도 동생이 모두 인출하도록 세팅해 놓았지만, 언제 어떻게 재발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매달 상환하고 있던 개인회생도 더 이상 납입하지 않고 폐지되도록 놔두기로 동생과 결정하였다.

20201, 코로나로 인해 방문 상담이 많이 힘들어졌지만 더 이상 재발하지 않았다. 아마도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주말에 하던 콜택시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게 되었고, 최저 생계비 185만원만 회사에서 지급받기로 하고 나머지는 급여 압류로 인해 공탁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마음의 동요가 있을 법도 했지만, 굉장히 의연하게 버텨내었다. 그렇게 코로나와 함께 1년을 지내면서, 조금씩 마음의 안정이 찾아오게 되었다.

20208월에는 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에서 진행하는 도박 엔딩 유튜브 채널의 복면 타짜라는 코너에 출연도 하였다.

센터에서 운영하는 예방 강사 프로그램에도 지원하여, 현재는 예방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예방활동단원으로도 활동 중이며, 중독자 및 중독자 가족들에게 회복 경험담을 전파하여, 조금이나마 회복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전히 개인 상담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 경험담을 빌려 윤 선생님을 포함하여,

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에서 근무하고 계시는 모든 선생님께 많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어쩌면 평생 센터와 함께하며, 중독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분들에 대한 나만의 아주 작은 보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다 2023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회복수기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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