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경험담
도박경험자(도박자) [성인] 초등학생이 다시 되는 방법
안녕하세요. 저는 2023년 7월 17일부터 잠실 가락 G.A. 모임에 참석하고 있고 동시에 개인 면담을 꾸준히 받고 있습니다.
처음 방문 했을 때, 저는 누나와 같이 상담받게 되었고 그때의 심정은 너무 불편하고 우울했습니다. 저를 가장 믿고, 내가 가장 의지할 수 있는 가족과 연을 끊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그 한마디에, 화가 치밀어 오르고 그 자리를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더군요. 하지만 제가 지은 죄가 있기에 이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함을 인지하고, 선생님의 지시와 처방에 순순히 따라야만했습니다.
단도박을 시작하겠다고 다짐한 순간부터 손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꿈속에서는 항상 베팅하는 모습이 보였고, 아침에 일어나면 주식의 흐름, 주식장, 그리고 도박 프로그램 등이 머릿속에서 계속 되감기 되는 괴로운 현상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도박을 하면서 느꼈던 짜릿하고 흥분된 뇌 감각 시스템에 열이 나기 시작하고 폭발 직전까지 오게 되더군요.
특히 급여일이 다가올수록 더욱 흥분을 가라앉기 힘들어졌고, 불안에 떨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께 일주일간의 일상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이러한 삶 속에 묻어있는 괴로운 상황들을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전주에 내려와 누나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이번 상담은 어땠니?’, ‘어, 좋았어’, ‘대박이야’ 이런 뻔한 이야기가 아닌, 솔직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누나들에게 피드백을 받았고, 종교 활동도 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한 주 한 주 지내다 보니, 조금씩 제 가치관을 흔들게 만드는 깨달음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저지른 잘못된 행동과 자만심, 오만한 태도로 가득 찬 제 모습이 느껴지니 부끄럽고 한심했습니다.
아빠를 보며 어른이 되고 싶어 했던 철없던 나였는데 어느새 30대 중반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귀엽고 자신감 넘쳤던 아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않았고, 비참하고 쓸쓸하며 불편해진 몸뚱아리만 남았습니다.
어찌 보면 그동안 저의 행동들이 전부 지탄받아 마땅함을 스스로 반성조차 못 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10여 년 전, 군대를 마치고 난 후 열심히 공부하자고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운 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적성에 잘 맞았는지 방학에도 공부에 매진하였고, 교수님 논문을 도와드렸으며, 교수님과 같이 여러 경로당과 마을에 돌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국가고시에 합격하자마자 취업에도 성공하고, 승승장구했던 제 모습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월급 받는 날 후배들에게 저녁을 사주며 좋은 선배로 남고 싶었고,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며 봉사활동을 하던 제 모습이 그때는 정말 멋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초라하고 촌스럽고 관리도 안 하는 뚱뚱한 몸만 갖고 있었습니다.
10여 년 동안 검도를 하면서 체력도 좋아서 현재의 고된 일도 전혀 문제없이 열심히 할 수 있었는데 자신감 넘치던 저의 모습이었는데요.
초・중・고 시절 12년 동안의 긴 세월 동안, 내 자존심 때문에 거짓말과 헛소리를 남발했던 모습 때문이었을까요?
12년 동안 사귀었던 친구 중 현재 연락이 닿는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보고, 정말 내가 나태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왕따나 다름이 없었죠. 거짓말을 너무 잘했거든요.
아직까지도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착각하는 뇌에 의해 제 행동들이 지배당한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끊을 수 있어!’ 군대 선임에게 배운 담배도 ‘상병을 달면 바로 끊자!
술도 끊자!’ 이렇게 다짐하고 생활하다 보니, ‘어? 이게 되네? 마음만 먹으면 끊을 수 있구나!’ 하며 자신을 칭찬했고, 이렇게 자신감이 올랐던 제 모습은 결국 안일한 행동을 낳게 되었습니다. ‘도박을 끊을 수 있어! 주식을 더 이상 안 할 거야!’라며 중독 행동들을 쉽게 끊을 수 있다는 나의 커다란 착각은 고작 1년밖에 가지 않은 행동이었습니다.
1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에 자책과 후회를 하였지만, 저는 앞으로 이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나아가도록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제가 G.A. 모임에 참석하면서 가장 이루고 싶은 소원은, 제 부모님을 이 자리에 모시는 것입니다. 저의 부모님도 도박중독자입니다.
저도 제 부모님도 중독자이지만 제 누나들은 도박중독자가 아닙니다. 선생님도 저도 궁금했습니다. 도박은 유전적으로도 전염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부모님과 제가 도박중독임에도 그 사이에서 강한 저항력을 표출할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궁금증은 아무리 찾아봐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진짜 하나님의 능력으로 버티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개인 면담한 지 6일 차 되던 시기에 선생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차가 한 대도 지나가지 않을 때, 보행자 신호가 초록 불일 때 건널목을 건너는 것은 좋은 건가요? 아니면 나쁜 건가요? 그러면서 ‘양심 냉장고ʼ라는 지난 예능프로그램을 보여주셨습니다.
1994년 새벽 4시, 차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시절. 멈춤 신호임에도 그저 지나가는 차만 보였습니다. 이게 당연하지 않나. 그 새벽 시간에 누구도 없기 때문에 신호를 위반해도 문제가 될 것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 차 한 대가 신호를 지키며 서행하는 장면이 비춰졌고, 운전자는 장애를 가진 부부였습니다. ‘나는 늘 지켜요’ 라는 대사 한마디를 남기고 이 영상은 마감합니다. 이 부부에게 양심 냉장고가 전달되는 순간, 이 프로그램 시청률은 높아졌으며, 신문 1면에서 보도될 만큼 큰 화젯거리가 됐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 누나들은 인생 단 한 번도 무단횡단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억났습니다. 교통사고가 나면 횡단보도 위에서 사고 나야 보험금도 많이 탄다며 농담했던 누나의 언행에 웃기만 했고, 건너편 편의점에 가기 위해 저 멀리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누나의 모습이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났었습니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무단횡단하는 저를 나무랐던 경우가 많았고요.
언젠가 누나가 친구에게 ‘만약에 더러워진 길이 깨끗해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질문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일정한 거리마다 쓰레기통을 배치해 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누나가 말한 대답은 달랐습니다. ‘애초에 내가 만든 쓰레기는 내가 가져가서 집에서 버린다’고 하더군요.
여기에 더해 페트병은 안의 내용물을 버리고 물로 헹군 다음, 라벨을 뜯고 분리수거해야 한다… 누나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인간으로서 살아갈 때 기본을 지키자는 의미였던 겁니다. 그리고 그 행동들을 누나들은 지키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그런 것들이 도박을 끊을 수 있고, 앞으로도 도박을 생각나지 않게 하는 방법이라 결론을 내렸습니다. 행동 하나하나 고치고 바르게 생활하는 습관을 기르는 중입니다.
‘신호를 지키고 걷는다ʼ, ‘일정한 속력으로 주행한다ʼ, ‘약속 시간보다 10분 더 일찍 도착한다ʼ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분리수거하며 버린다ʼ 마지막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ʼ 등등. 초등학교 때 배운 바른생활에서 나오는 기본 그대로를 지키는 습관, 마치 다시 초등학생이 된 것처럼 삶을 이어 가자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 못된 버릇이 몸에 배어 있는 것만으로도 내 자신이 짜증나고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언가 가볍습니다. 내가 만든 쓰레기를 집까지 가져가 버릴 때 뿌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음료수를 포장하여 마시고 남아있는 얼음과 그 내용물을 비우고 물로 헹군 다음 버리는 습관이 이제 몸에 배다 보니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회복 단계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행동 즉, 봉사활동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습니다.
지금 제 주머니 속엔 봉지 한 장이 들어 있습니다. 제가 만든 쓰레기를 여기에 담아가려 준비한 겁니다. 어느새 저는 주변에 보이는 플라스틱 통과 바람에 날린 아이스크림 비닐을 하나하나 줍고 있더군요. 분리수거하여 하나하나 버리고 손 씻고 있는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멋있어 보입니다.
‘오늘도 해냈구나. 내일도 열심히 지켜보자’ 영원히 이 습관을 지킬 것을 다짐합니다.
도박했을 때 전주라는 장소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심지어 전주 톨게이트를 보면 숨이 막히고, 집에 다다르면 더 제 목을 조여 오는 것 같았습니다.
누나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거짓말하면서 도박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G.A. 모임에 참석하고 난 후, 전주라는 단어는 바라만 봐도 가슴이 따뜻해졌고, 누나 집을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저에게 해주는 말 한마디가 매번 가슴을 울립니다.
‘아이고, 고생했네. 배고프지. 뭐 먹을까?’
씻고 나오는 내 얼굴을 보며, 항상 울상이었던 얼굴이 이제 전과 다르게 웃고 있는 게 보인다며 칭찬해 줍니다.
G.A. 모임에 참석해서 자기소개 할 때마다 ‘지난 일주일 동안 행복하게 생활했고….’ 라는 표현이 많아졌습니다.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불안하고 초조했었는데 이제는 눕기만 하면 꿈도 꾸지 않고 아침까지 숙면할 정도로 바뀌어졌습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극 중 이런 대사가 생각납니다.
‘지나가다 이 회사 건물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고’
저도 마찬가지로 G.A.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한 시간 반 동안 지하철을 타고 왔는데, 도착하자마자 이 건물만 바라봐도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가락동 G.A. 모임은 저에게는 구원의 손길이었습니다.
도박에서 나오는 도파민보다, 공중도덕을 잘 지키고 힘들지만 지켰을 때 느낄 수 있는 뿌듯함, 남을 배려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행복을 전달하는 세로토닌 분비를 많이 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꿔준다면 여러분들도 충분히 도박중독에서 이겨내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중독자들을 치료하는 상담사로 남고 싶어 공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공부의 주제도 선정했습니다. ‘현재, 청소년과 어린이의 도박중독 심각함과 회복의 방법’ 자본주의 시대에 노출된 미래의 아이들에게 밝은 빛을 선사하기 위한 저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단도박을 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다 2023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회복수기집 발췌
* 음성파일과 내용이 다른 일부 단어는 내용 저장 상 금지어로 저장되어 음성 내용과 상이할 수 있음
해당 저작물은 공공누리의 4유형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 다음글
- [성인] 단도박 8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