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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경험자(도박자) [성인] 거북이처럼 한걸음씩

작성일2024-10-25 조회수193

어떤 일이 있어도 새벽에 일어나 테니스를 치고 출근한다.ʼ

하루에 목표금액인 5천 원을 벌지 못하면 그날 점심을 굶는다.ʼ

 

시골에서 태어나 농부에서, 군 제대 후 홀로 상경해 가게 점원으로 시작하여 홀로 사장까지, 늘 바쁘고 성실하셨던 아버지. 자린고비를 강조하시며 부지런함을 몸소 실천하고 보여주셨던 아버지는 내게 그저 돌처럼 차가웠고 높은 벽 같은 존재, 그 자체였다.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늘 나보다 우위였기에 아버지를 뛰어넘어 보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그렇게 꾸준함과 노력, 성실만이 이 험한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답이라고 세뇌 받으며, 한때 신부님을 꿈꾸던 모범생이었다가, 사춘기를 겪으며 반항 속에 학창 시절을 보냈다. 벼락치기로 가까스로 입학한 대학에서 나는 경제학을 택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재미있는 제목의 경제 서적,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ʼ 라는 책을 읽고 우리 아빠는 노동력을 갈아 넣어 성실하게만 돈을 버는, 책에서 소개된 가난한 아빠 라고 생각이 들었으며, 나는 재테크와 다양한 파이프 라인으로 부자 아빠가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내 전공이 경제학과라는 이유로 주식을 시작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에도 공부보다는 아르바이트와 게임, 술에 빠져 돈과 도파민에 목말라 있었던 듯하다. 장기 투자하겠다며 우량주 위주로 담기 시작한 주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단타(주식시장에서 주식을 매수 후 짧은 시간 내에 매도하는 행위. , 단기간에 시세차익을 남기는 투자 방식)의 맛을 보며 도박은 그렇게 소리 없이 찾아와 내 삶에 동행하기에 이른다.

여유 시간이 많았기에 각종 모의투자 대회는 다 찾아 나가고 종목토론방에서도 터줏대감처럼 붙어살며 마치 워런 버핏이라도 된 것처럼 착각 속에 빠져 살았다.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는 진리를 몸소 실천하겠노라며 한동안 주식에 미쳐산듯 하다.

주식에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부어도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란 놈은 결국 토토와 코인, 옵션까지 온갖 도박이란 도박에 다 손대게 만들고 나를 지옥 끝까지 몰아놓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상상도 못 할 큰 액수의 돈을 쉽게 딴 적도 있었기에 돈을 우습게 썼다.

이게 자본주의의 맛ʼ이라며 건방 떨며 살았던 과거의 씨앗은 불행이란 열매가 되어 한가득 열렸고, 내게 도박중독자와 빚쟁이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지름길을 택하려다 지옥 길에 발을 잘못들인 나는 핸들이 고장 난 트럭처럼 방향을 전환하지 못한 채 비틀비틀 낭떠러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브레이크는 고장 났고, 연료가 떨어질 때까지 달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라도 멈췄으면 좋았을 것을.

 

귀신에게 홀렸는지 어디서 그렇게 거짓말은 술술 나오는지 밤에 운전하다 사람을 쳤다ʼ,

술 먹고 싸우다 합의를 봐야 한다ʼ 등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계속해 가며,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빌리기 시작했다. 어둡고 깜깜한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고 바닥에 닿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이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빚이었다. 생애 첫 자금 대출로 산 아파트도 대출이자에 허덕이며 담보가 잡혀 팔아야 했고, 전세 보증금으로 쓰려고 조금이나마 남긴 돈 역시 바로 한방에 탕진, 모든 것을 다 날렸다.

몇 번이나 죽을 시도를 했는지, 각서를 쓰고 울고 빌고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그럼에도 나의 도박 행각은 멈추질 않았다. 삶이 나아질 만하면 3개월,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재발에 재발을 반복했다.

나는 어느덧 양치기 소년보다 더 한 악랄한 양아치가 되어있었다.

 

그 많은 빚에 어디서 돈이 나서 또 재발했을까?

 

다신 안 하겠다고, 다시 도박을 하면 목숨이라도 내놓겠다고 굳게 다짐했기에 가족들은 양치기 소년의 말을 끝까지 믿어주었고, 모든 돈을 변제해주었던 것이다.

분명 빚이 목 끝까지 차오르고 사채업자들이 집과 회사를 어슬렁거리며 변제를 독촉할 때는 죽을 것처럼 괴로웠는데, 이를 해결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고통은 사라지고 또 도박으로 만회할 수 있다는 감정이 매번 들었던 것 같다.

마치 봄이 오면 길거리에 벚꽃엔딩이 흘러나오고, 겨울이 되면 감기를 몰고 오듯, 나의 도박중독은 괜찮아질 만하면 늘 일정한 패턴으로 꿈과 희망을 품고 찾아왔다.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ʼ, ‘한 번만 더 손대면 진짜 생을 마감해야지라는 나와의 약속도 이젠 무의미해지고 나란 인간은 도박과 연을 끊을 수가 없구나라는 좌절과 체념까지 했다.

그렇다고 인생을 포기하는 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자 진짜 세상은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구나라며 실의에 빠졌다. 도박하는 것도 끊는 것도 다 맘대로 안 되었으니…….

그래도 이 미친 중독을 멈춰야만 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와 이것과 맞서 싸운다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중독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은 나를 너무 무기력하고 무능력하게 만들었다거짓말의 달인이 되었지만, 또 구걸하기 위한 거짓말에는 정말 구역질이 났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나는 이미 거짓말쟁이로 낙인 찍혀 가족과 친구들,

주변인에게 모든 신뢰를 잃었다. 그야말로 진짜 늑대가 나타나면 물려 죽을 판의 살얼음 길을 걷고 있었다. 아니, 그저 한없이 주저앉아 누가 날 살려주기를 기도하고 원망하며 바랬던 것 같다.

하지만 버스 떠나고 막차 시간도 한참 지나버린 정류장에서 아무리 손 흔들고 소리 질러 봐야 어떠한 변화도 오지 않는다.

끝이 안 보이는 어둠만 한가득한 터널에 주저앉아 일어설 힘도 없이 외로움과 고독만이 가득한 세상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난생처음 겪어보는 기분을 겪자 또 도파민이 채워지면 좀 나아질까?ʼ,

도박에 몰입하면 좀 잊혀질까?ʼ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이 밀려든다.

도박할 때는 도파민에 취해 혹은 한방이면 해결될 거란 막연한 기대감에 돈을 아무리 잃어도 언젠간 터지겠지란 믿음으로 하루를 버텼다. 모든 약을 다 써도 듣지 않는 시한부 선고받은 말기함 환자처럼 힘도 희망도 없이 매일 눈 떠야 하는 그 하루가, 아침이 너무 괴로웠다.

언제 끝날까? 아니 끝나기는 할까? 의심과 후회, 나에 대한 원망과 비난을 반복하며 죽지 못해 연명했고 그 삶은 괴로움 자체였다.

그래, 인간답게 살려면 도박은 이제 진짜 그만! 아프지만 그래도 살려면 이제 진짜 멈춰야 한다.’ 이런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나의 진짜 단도박은 시작되었다.

이제는 어떤 다짐이나 각오를 주변에 말해도 믿어주지 않았기에 서러웠지만, 이 모든 게 내가 만든 것이기에 그저 다시 예전처럼 돌려놓고 싶은 간절한 마음뿐이었다.

 

정신과를 가보고 여기저기 알아보니 마침 회사 근처 안국역에 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가 있다고 하여 방문하였고 상담을 받았다.

벽마다 빼곡히 꽂힌 도박과 중독에 관한 책들, 그리고 평가한 테스트에서 심각한 중독상태라 판정을 받고 나니 이제야 좀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그동안 중독 자체를 부정하며 현실을 직시하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도박에서 빠져나와 사는 것이 더 무섭고 두려웠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다 내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도박에 대해 또 왜 그렇게 미쳐있었는지, 매번 나약하게 무너진 나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었다.

도박하며 전혀 손도 안 댔던 책을 다시 들었다. 도박에 관한 책부터 중독, 심리, 정신력 회복 등에 대한 다양한 책들을 읽어가며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물론 순탄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채무 압박에 눌려 죽을 것 같아 개인회생이란 것도 신청해보고, 도박을 끊으니 불안하고 공황장애가 와서 게임이나 술에 의존하는, 흔히 교차중독이라는 것에 빠져 그렇게 한동안 잊으려고 또 나쁜 것을 얹고 살았던 듯하다.

 

기본적인 마인드와 정신력, 삶을 대하는 자세. 내가 지닌 모든 게 문제였고, 습관이 아주 나쁘게 들어 한 번에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도박을 하거나 음주 등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 환경부터 쳐내야만 했다.

또다시 시행착오를 겪고 싶지 않았다. 책에서 읽은 대로 상담 받고, 그 안에서 배운 것

을 따라 하려고 애 쓴 것 같다. 주변에 도박하던 이들을 모두 차단하고 철저하게 더 고독을 즐기며 살기로 했다. 어차피 도박을 멈춘 뒤엔 자존감이 바닥이었기에 사람들 만나는 건 자연스럽게 멀리했던 것 같다. 운명의 장난인지 머지않아 코로나도 터지는 바람에 술자리는 자연스레 멀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용접, 지게차, 드럼, 복싱, 우쿨렐레, 영상 편집 등 다양한 것들을 배웠다.

바쁘게 살아야만 머릿속에서 다른 잡념이 지워졌기에.

 

약을 먹었던 초반을 제외하면 주말에도 늘 쉴 새 없이 일하거나 취미 생활을 하며 하루를 가득 채웠던 것 같다. 그렇게 노력하고 고독을 이기기 위해 명상하며 나와 대화를 자주 하고 일기를 쓰고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다해 봤다.

 

다시 재발하지 않기 위해 창피함을 무릎 쓰고 도박중독자임을 시인하며 시작한 유튜브. 도박중독을 인정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정이라고 했다.

내 영상을 많은 이들이 공감 해주었다.

나 같은 사람이 전국에 나 하나만 있는 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도박중독 때문에 힘들어했고, 나보다 더 오래 끊고 멈추고 계신 분들의 이야기도 들으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고자 노력했다. 노력한다고 자존감이 올라가진 않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희망을 주입해야만 했다.

비록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도 큰 상처를 주었지만, 이제라도 만회하려면 정말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었다.

안 하면 죽을 것 같던 도박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희미해져 갔고, 비로소 도박에서 자유로워지자 거짓말을 힘들게 지어가며 살아왔던 삶에서 벗어나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졌다.

 

물론 빚은 한 번에 줄어들지 않겠지만, 한 줄기 희망이 차차 보이기 시작한다.

답이 없어 보이던 내 인생도 슬슬 답지가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고 문제 풀이 과정을 스스로 쓸 수 있을 정도의 여유도 생기기 시작했다.

 

단도박과 함께 시작한 운동과 금주도 빛을 발휘했다. 건강검진에서 신체 나이가 내 나이보다 젊게 나오고, 약을 평생 먹어야 한다던 간수치도 정상화되었다. 몸도 마음도 일반 사람들, 그토록 부러워했던 평범함에 가까워졌다.

그렇게 흘러 지내온 단도박 5년 차,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도박, 왜 네가 내게 다가와 떠나질 않았는지…….’

욕심 많은 나를 혼내주었고, 그러고도 미련 못 버리고 집착하는 내게 큰 벌을 주었지.’

감사함을 모르고 당연하게 살아왔던 내게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과 무엇이 인생의 큰 가치인지 알려주었고,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고 휙 떠난 듯하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오랜 세월이 흐르고 많은 것을 잃고 나서야 깨달았지만, 그래도 몸 하나는 살려주었으니 이젠 토끼가 아닌 거북이의 삶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보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지만 분명 열심히 사는 한 시간은 내 편이니 머지않은 내 미래의 삶은 분명 지금보다도 더 밝을 거라 확신하는 바이다.

도박중독은 죽어도 못 끊는다는 말은 누가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 스스로 확실히 깨고 스스로 증명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나로 인해 상처받았을 부모님과 나를 믿고 결혼한 아내, 그리고 사랑하는 두 딸에게도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늘 위기이고 힘든 나날의 연속이지만, 이를 극복하고 만회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노라고 묘비에 쓰였으면 좋겠다. 그 하나만으로도 내 단도박은 가치 있고, 회복하고 성장하는 나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찬란히 빛나고 아름답다.

아직도 온전히 나를 믿지 못하시는 아버지께도 언젠가는 인정받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길.

아니, 꼭 인정이 아니어도 누구에게도 한 점 부끄럼 없도록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겠노라 다짐해 본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다 2023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회복수기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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