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재활

회복경험담

도박경험자(도박자) [성인] 늘 미안하고 감사한 그 이름 가족

작성일2024-10-25 조회수75

저는 어려서부터 참으로 무뚝뚝한 아이였습니다. 어머니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 못하는 흔한

남자아이였습니다. 대화 자체를 싫어한 건 아니었습니다. 단지 방법을 잘 몰라 서툴렀고 경험하지 않다 보니 그게 버릇이 된 거겠죠.

 

가족에게 살갑지 못했던 저는 도박을 접하게 되면서 더 밖으로 겉돌았습니다. 집에서 가족과 둘러앉아 대화를 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조차 아까웠습니다. 그 시간에 한 경기라도 더 분석하여 돈을 따는 것이 더 중요했고, 가족의 안부보다 내가 건 경기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너무나도 궁금하였습니다. 도박 문제가 점점 심해질수록 가족과의 관계는 더 멀어지고 단절되어갔습니다.

 

도박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곪아 터진 일만 몇 번이나 되풀이 되었는지 모르게 시간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가족과의 관계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너덜너덜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매번 저에게 다시 믿음을 주시며 열심히 살아가자고 해주었지만, 늘 얼마 가지 못해 그 믿음을 저버리기만 반복했습니다.

 

긴 방황의 시간을 보내면서 가족들도 저도 너무나 지쳐버렸습니다. 이제는 이 지긋지긋한 생활을 끝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단도박의 길.

초반에는 가족들의 응원도, 어떠한 관심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너무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견디며 지내다 보니 어머니와 동생이 다시 저를 봐주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아버지께서 여전히 등을 돌린 채 없는 사람 취급을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아버지께

서운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저에 대한 믿음을 주시길 바라는 것도 제 이기적인 마음이고 욕심인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꾸준히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제 노력하는 마음을 알아

주실 거라고 좀 더 참아보자고 더 이상 내 상황을 회피하지 말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다짐을 더 했던 것 같습니다. 단도박에 집중 하며 지내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드디어 아버지께서 제게 말을 건네주셨습니다. 저를 용서해 준다는 게 쉽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럼에도 용서를 해주고 믿어보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가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도박을 멈추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로써 가족 모두와의 관계가 다시 연결되고 회복이 되기 시작하면서 그전에는 없던 마음의 평온함이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제 회복의 탄력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채무 문제를 해결하려고 접수까지 마쳤고 추심의 압박에서 벗어났습니다. 3개월간 추심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왔는데 그것이 해소되자 이제 더는 신경 쓸 게 없어졌습니다. 정말 오로지 도박중독의 회복에만 집중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때때로 우울감과 지난날의 후회가 불쑥불쑥 찾아오긴 하지만 그럴 때마다 도박 충동에 바로 넘어가지 않도록 나름의 대처 방법들을 실천하면서 이겨나갔습니다. 걷기, 취미활동, 단도박 모임, 일기 쓰기, 명상해볼 수 있는 것들은 다 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가능한 영역에서 움직였습니다. 가만히 앉아있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테니 계속 움직였습니다.

가족과의 관계를 더욱 개선하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을 썼습니다. 이전에는 잘 하지 않던 시덥잖은 농담도 한마디 던져보거나, 방에 들어가서 휴대전화만 보던 제가 거실에 같이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저녁 시간에 먼저 한 마디씩 건네면서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곧 결혼을 앞둔 여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지만, 믿음을 줄 수 있는 오빠가 되고 싶었습니다. 동생이 결혼하고 나면 부모님과 저, 이렇게 셋이 지내게 될 테니 동생에게 괜히 불안감을 주지 않도록 열심히 생활했습니다. 더 좋은 걸 해줄 수는 없었지만 치킨에 맥주 한잔 정도 사주면서

결혼 준비 과정에서의 힘든 점이나 어머니와의 갈등이 있었던 이야기를 들어주며 조금이나마 스트레스를 덜어주었습니다.

 

단도박을 하면서 전에는 못했던 가족과의 사소한 일상들을 종종 경험해보게 되었습니다. 도박을 멈추기만 했을 뿐인데 많은 경험과 좋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왜 이런 쉬운 일들을 못했을까 아쉽기도 합니다.

 

단도박을 이어온 지 이제 겨우 1년 반이 되어갑니다. 글을 시작하면서 이야기한 저의 결함이나 단점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다만 이제는 부모님께 쉽게 다가가 가벼운 농담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하나하나씩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히 이전과는 달라진 것들이 존재합니다. 그러한 작은 변화들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가장 먼저 느끼고 달라졌다고 말해줍니다.

어머니도 제가 가끔 농담을 건네고 나면 해 주시는 말이, “네가 마음이 편해지니까 이렇게

농담도 하게 되고 얼마나 좋으니?”

 

정말 맞는 말입니다. 더 이상 도박으로 인한 쓸데없는 걱정이 사라지니 과거에는 없던 여유가 생겼습니다. 여유가 생기니 농담도 하고, 웃기도 하는 거겠죠. 차츰 여유가 생기고 이러한 생활이 지속되다 보니 가족과의 관계는 제가 살아왔던 시간 중 가장 가깝고 좋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가족끼리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와서 사진을 정리하는데 사진 속 여행을 즐기시는 아버지의 얼굴이 너무나도 밝고 행복해 보이셨습니다.

제 도박이 또 재발했다면 이 가족여행은 존재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부모님이

저렇게 행복하고 즐거워하는 얼굴을 볼 수 있었을까?

지금도 내가 다시 도박하게 된다면 저 밝은 얼굴에 어둠이 가라앉게 될 텐데라는 생각이 떠올라 정말 무섭고, 절대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박중독은 저 하나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주변에 소중한 모든 것들을 죽이는 일입니다. 제가 살아야 가족도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게 도박중독의 회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제가 도박 없이 살아가기 시작했으니 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앞으로도 꾸준히 도박중독에서 회복해 나갈 것을 오늘도 다짐하며 실천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다 2023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회복수기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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